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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5. 8. 17. 22:27

 

나름 사회의 톱니바퀴 역할을 자처한지도 별안간 4개월이 지났다. 대학생에게는 1/8학기가 지나고 성적을 기다릴 정도의 시간이었겠으나, 사회인의 4개월이 갖는 무게감이라는 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나는 허덕이거나 울먹이거나, 지쳐있거나 숨어있거나 했다. 나를 받아준 이 곳에서 내가 잘해내겠다고, 역대 최악의 취업난이라는 이 시대에 승리자가 된 기분으로 의기양양하기도 했었다. 인생에 여러 굴곡을 만나면서도 큰 실패 없이 살아 온 스스로가 이번에도 해냈다고. 잠시나마 뿌듯함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. 처음 나온 명함 한 장을 부모님께 드리고 예쁘게 구도 잡아 사진을 찍어 두면서, 그래 이런 사소한 행복으로 살아가는 거겠지, 지레짐작한 적도 있었다.

 

허나 지금은 모르겠다. 아침 7시 30분 부터 회사 모니터를 켜고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자리를 벗어나는 이 생활에서 어떤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. 깨진 손톱과 땀내 나는 옷을 펄럭이며 에어컨 꺼진 사무실에서 쏟아지는 잠과 벌이는 싸움이 유쾌하지 않은 것것은 제쳐두고서라도 아무렇지 않지가, 않다.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소멸되어 이제는 사원 아무개만 남았다.

 

다짐했었다. 올해는 일상이 아닌 삶을 살겠다고. 지난 2년 간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 온 스스로가 불쌍해서라도, 좀 수분기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. 하지만 젖은 수건 같던 삶은 이제 건조하다 못해 퍼석해졌다. 남들 다 해내는 생활을 왜 내가 못해내는 지,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때의 마음가짐이 왜 지금은 들지 않는 건지, 내가 나이브한 건지, 세상이 생각보다 삭막한 건지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.

 

하루 받은 휴가를 부디 나답게 써보고 싶었다. 별 거 아닌 줄 알았던 예전의 일상 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. 조금 게으름을 피우며 느즈막히 일어나 씻고, 먹고 싶은 것을 먹고, 보고 싶은 것을 보다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, 통화하고, 만지고, 노트북을 들고 집 앞 카페에 나와 하릴없이 따닥거리고, 톡톡거리고, 중얼거리는. 그런 하루를 보내자 이제는,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어졌다.

 

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일 텐데, 하는 생각이 옷깃을 붙잡는다. 그래도 아는 얼굴 좀 생기고 농담 따먹기 할 사람이 생겨난 이 곳이 더 낫지 않을까. 어디 가서 부족하지 않은 연봉이라 자랑하고 엄마 아빠가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큰 고민 없이 안겨드릴 수 있는 지금이, 나은 것 아닐까. 다른 애들은 아직 허덕이는데. 여유 속에서 괴로워하는데. 돈이라도 벌고 있는 내가 좀 더 나은 상황인 건 아닐까. 아니야, 죽을 거 같은데.

 

반 년을 버티면 나을 지 모르겠다. 일 년 정도 버텨보면 할 만 할까. 버틴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건 아닐까. 마음이 울렁거려 힘든 요즘이다. 내가 나약하고 부족해서. 아니야 회사가 너무 심하지. 그래도 남들은 잘 버티는데. 에이 그네들도 다 하루 하루 견뎌내는 거지. 하루에도 수백 번씩 스스로를 타일렀다가 꾸짖었다가, 책망했다가 위로했다가. 울었다 실실거리다. 그렇게 밤을 맞는다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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